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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가 만나기

프리다 칼로 - 미술계 여성 혁명가

미토1004 2024. 11. 22. 23:55

프리다 칼로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된 건 TVN 방송의 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서였다.

일자 눈썹의 자화상 그림이 특이해서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됐을 때는 '작품이 특이하구나'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 깊이 알게 되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책도 사고 자료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이야기가 프리다 칼로의 막장 남편 '디에고 리베라'이다.

디에고의 막장 불륜 이야기는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너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나는 '방구석 미술관'에서 읽은 내용에서 불륜보다는 어떻게 해서 '프리다 칼로'가 미술계 여성 혁명가의 위치까지 올라가게 됐을까에 초점을 맞춰서 글을 쓰려고 한다.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1907–1954)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로, 그녀의 작품은 남편 '디에고'를 향한 배신에 대한 감정과 복수를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그녀가 겪은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멕시코의 전통문화, 그리고 정체성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프리다 칼로 - 네이버 제공 이미지

 

  • 프리다 칼로의 신체적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
    프리다 칼로, <사고>, 1926 - 방구석 미술관 책 중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 1944 , https://www.fridakahlo.org/

    프리다는 여섯 살에 오른발 소아마비로 시작했지만 강한 정신으로 의사가 될 꿈을 가지고 최고의 명문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다시 18세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온몸에 있는 뼈가 으스러지고, 심지어 골반뼈가 세동강 나며 아이까지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잃었겠지만 프리다 칼로는 역시나 강했다. 붓을 들고 자신을 담은 자화상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그리면서 자신을 치유해갔다고 한다.

    위의 "부서진 기둥 (The Broken Column)"이라는 작품에서 그녀의 척추 부상을 철 기둥으로 묘사하여 그녀의 고통과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림에서 표현된 못을 봐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지 느껴진다.

  • 막장 남편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생활(신혼 초라고 해두자)을 그림으로 표현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https://www.fridakahlo.org/

    막장 남편인 디에고의 세 번째 부인이 된 후 정치적-둘 다 멕시코 공산당원-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대단한 위치에 있던 남편을 위해 작품활동을 접기까지 했다고 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프리다가 입고 있는 의상도 남편인 디에고가 매우 사랑하는 멕시코 전통의상이며 디에고에 비해 자신을 매우 작고 조신하게 표현했다.

    그런데 막장 남편인 디에고는 아이를 몹시도 갖고 싶어 했던 프리다가 세 번의 유산을 하고 아래와 같은 유산의 고통과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프리다는 기존의 어떤 예술사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개성 넘치는 걸작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진실을  직시하고,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프리다의 힘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들이었다. - 디에고 리베라 "
    프리다 칼로, <떠 있는 침대> 1932, 방구석 미술관 책 중


  • 남편 디에고에 대한 복수의 서막을 그림으로 표현
    프리다 칼로, <단지 몇 번 찔렸을 뿐>, 1935, 방구석 미술관 책 중

    위의 그림은 막장 남편 디에고가 정말 제대로 막장을 저지른 사건-프리다 여동생과의 불륜-후에 프리다가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그려 남편에게 보낸 그림이라고 한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액자에까지 피가 튀어 있는 것을 표현했을지 그 마음이 느껴진다. 이때부터 프리다의 새로운 그림이 탄생했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이런 그림을 그리게 막장 불륜의 끝판왕을 보여준 디에고에게 감사해야 할까. 

  •  '불륜'과 '예술에는 예술'이라는 복수를 통해 자신만의 그림을 표현

프리다 칼로, <두 명의 프리다>, 1939, https://www.fridakahlo.org/


위의 '두 명의 프리다(Two Fridas)'라는 작품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우측 프라다의 손에는 디에고의 사진이 담긴 메달이 쥐어져 있으며, 이 사진 역시 혈관을 통해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유럽풍 의상을 입은 프리다는 가위로 심장으로 이어진 혈관을 잘라버렸다. 

 

디에고를 향한 복수로 불륜대 불륜, 예술에는 예술로 대응했던 프리다는 1938년, 멕시코시티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 뉴욕 개인전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뉴욕 개인전을 통해 전업 예술로 성공한 프리다는 '혈관을 자르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널(디에고) 잘라버리겠어'라는 심정으로 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디에고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할까. 이렇게 프리다 칼로처럼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게 해 줬으니.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있는데 멕시코 500페소 지폐에는  앞면에 디에고 리베라, 뒷면에는 프리다 칼로가 그려져 있다고 한다. 네이버에서 500페소 지페를 찾아봤다.

멕시코 500페소 지폐 - 프리다 칼로

 

올해 '성남큐브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전'을 진행한다고 한다.

너무 가고 싶은 전시회이기는 하나 내가 있는 곳에서 성남큐브미술관까지 3시간 30분을 가야한다. 

그래도 전시회 기간은 상당히 긴편이라 고민을 해봐야 겠다.

네이버 제공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mbg_nex.people&mra=bjBC&pkid=360&os=35824447&qvt=0&query=%ED%94%84%EB%A6%AC%EB%8B%A4%20%EC%B9%BC%EB%A1%9C%20%EB%A0%88%ED%94%8C%EB%A6%AC%EC%B9%B4%E5%B1%95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展 : 네이버 검색

'프리다 칼로 레플리카展'의 네이버 검색 결과입니다.

search.naver.com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고통과 열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독보적인 화가이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가 가진 강한 정신과 열정을 본받고 싶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길 간절히 희망하면서 오늘의 글을 마친다.